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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방 - 법인정신과 세가지 자아 -경산종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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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정신과 세가지 자아

세상이 아무리 변하고 가치관이 변하더라도 희생정신만큼 숭고한 것은 없습니다. 가정이나 교단이나 세계나 희생정신이 살아 있으면 그 집단은 발전 할 것입니다.

법인성사의 정신을 한마디로 말하면 살신성인의 희생정신입니다. 구인 선진님들은 교법을 이 세상에 전하고 교단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서, 그리고 일체생령들을 구제하기 위해 생명을 바쳤습니다. 그런 희생이 인(仁)을 이뤘습니다. 인은 도덕의 인, 진리적 인, 성스러운 인입니다. 이 어질 인은 자비라고 할 수도 있고, 도(道)라고 할 수도 있으며, 성스러운 가치라고 말 할 수도 있습니다. 진리적 자아를 실현시키면 그것이 곧 인의 근본이 됩니다.

우리에게는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본래적 자아가 있습니다. 그것은 무아적 자아입니다. 무아적인 본래 자아를 깨닫고 그것을 본받아 실천하는 것이 진리적 자아와 인의 모체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또 우리에게는 불생불멸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불생불멸한 그 마음이 움직일 때는 인과보응의 원리로 운용됩니다. 그래서 중생은 전부 ‘내가 있다’ ‘내가 무엇을 한다’ 이렇게 생각하지만 인을 실현한 성자들은 무아의 자리를 터득해서 그것을 교과서 삼아 자기화 시킵니다. 그러니 경계를 당할 때마다 무아적인 자아가 어떤 것인가를 확실히 터득해야 합니다.

대종사님께서는 그 자리를 코풀기보다 쉬운 자리라고 하였습니다. 그 자리를 확인하고 다시 확인해서 더 확인할 것도 없는 경지에 이르러야 원만한 견성이 됩니다. 그 자리는 생멸이 없는 성품자리며 또한 모든 이치가 인과보응 되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그 자리는 본래 고요하고, 본래 지혜롭고, 본래 덕스럽습니다. 그것을 깨달아야 궁극적으로 깨달았다 할 수 있습니다.

다음에는 습관적 자아가 있습니다. 본래는 똑같은 마음인데 경계 따라서 한마음을 내면 그쪽으로 마음이 길들여지고, 말이 길들여지고, 몸이 길들여지게 됩니다. 그렇게 길들여진 자아가 지금의 나입니다. 우리는 과거 생에 습관으로 길들인 것이 업력으로 밀려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합니다. 과거의 습관이 또 습관을 길들이고 결국에 그 습관이 나를 지배하게 됩니다. 내 뜻이 나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업이 나를 지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업의 굴레를 벗어나서 부처되는 습관을 어떻게 길들여 나갈 것인가 반조해야 합니다. 부처되는 습관을 길들이면 만 중생으로부터 존경을 받고 늘 기쁨 속에서 살 수 있습니다. 부처되는 습관을 길들이는 것은 곧 유무념 대조를 하는 것입니다. 대종사님께서 정기훈련법과 상시훈련법에 모두가 “주의 할 것이요” 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부처의 습관을 길들이기 위해서는 늘 유무념 대조로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내가 몇 프로나 부처의 습관을 길들이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고(苦)를 면하고 업을 넘어서려면 부처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습관을 잘 길들여야 합니다. 나의 업력을 이룬 습관이 무엇인가. 금생에 어떤 방향으로 길들여서 지금의 나를 만들었는가를 화두삼아 생각해봐야 합니다. 대산 종법사님께서는 “뚜벅뚜벅 가거라. 그리고 한번 이렇게 휙 돌아봐라 그래서 이대로 가면 좋겠다. 그러면 쭉 가고 그러지 못하고 다른 데로 잘못 가고 있다 그러면 마음에 길을 휙 돌려서 그쪽으로 가거라. 그렇게 하는 것이 잘 사는 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다음에는 사회적 자아가 있습니다. “누구는 어떤 사람이다”라고 세상에 돌아다니는 소문이 있습니다. 그래서 청문회 같은 것을 보면 그 사람이 사회에 어떻게 기여했는가를 알게 됩니다. 이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나는 진실한데 너는 거짓말쟁이라고 다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아무리 진실해도 거짓말쟁이가 되고 맙니다.

이런 사회적 자아에 대해서 누가 책임을 져야 합니까. 나는 아주 착하다고 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나를 착하지 않다고 하면 다른 사람을 탓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나의 책임인가 살펴보아야 합니다. 결국 사회적 자아도 나한테 원인이 있습니다. 내가 지혜롭지 못하고 내가 공적이지 못했기 때문에 나에 대한 사회적 자아가 잘못 형성된 것입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한테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 것도 그 책임이 나한테 있는 것이지 평가 하는 사람한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회적 자아가 어떤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들은 법위사정을 합니다. 말하자면 법위를 평가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그 사람의 사회적 자아 즉 공적인 인물됨을 평가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 평가를 통해 법마상전급, 법강항마위, 출가위 등 법위가 결정됩니다. 그때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어떻게 평가 되고 있는지 여실히 나타나게 됩니다. 이때에 공정하고 사심 없이 진리적 평가를 잘하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내 스스로가 그 평가에 대해 책임을 지고 겸허한 자세로 참된 사회적 자아 형성에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은 억만 분신의 모습을 갖추신 분입니다. 내 마음속에 대종사님의 분신을 모시고 보신불이 되고 백억 화신을 나투는 부처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백억 화신을 나툴 때 교화대불공이 되고, 대종사님의 심통 제자가 되며, 대종사님께서 염원하는 천여래 만보살의 불국토를 이룰 것입니다. 백년 성업을 앞두고 자신성업봉찬을 근본으로 천여래 만보살의 대열에 모든 교도님들이 함께 하기를 염원합니다. 모두 함께 용맹정진하여 대성인이 무수하게 배출되는 그런 교단이 되도록 합시다.

< 원기96년 법인절 기념 법문 >